일상사
악!!!!!
진탱 -
2011. 3. 2.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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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내용이랑은 전혀 상관없는 알바하는 학교 복도 사진
알바일지 써도 소설 한 편은 나올 듯.
알바 D-1
여태까지 알바를 해본적 도 없고 누구를 가르쳐 본 적도 없는 상태에서 통역알바를 소개받았다. 정말 운이 좋았다. 치치부 갔을 때 카노 씨랑 붙어서 앉아서 수다 떨었을 뿐인데 시급도 쎈 알바를 내가 찾지 않아도 단박에 소개 받다니. 하지만 잘 할수 있을 까 불안했다.
알바 첫날
전화상으로는 얘기가 그나마 잘 통할 것 같은 나이대로 생각해서 6학년을 하겠다고 했는데 막상 가보니까 통역 내용은 6학년이 어려울 것 같다고 나 말고 일본어+한국어 베테랑이신 분이 형인 6학년의 담당 선생님이 되시고 나는 동생인 3학년을 맡게 되었다.
얘기 들어보니까 일본 온 지도 얼마 안된것 같았다. 갑작스레 바뀌어 버린 환경, 어머님이 일본분 이시만 집에서는 한국어만 쓰고 자란 것 같았다. 형은 내가 하는 자기소개랑 다른 어른들이 말씀 하시는 일본어를 통역해서 동생에게 말해줬다. 형은 생각보다 일본어가 되는 모양이다. 형은 6학년의 보통 체구 인 것 같은데 동생은 체구가 작았다. 한국으로 치면 2학년 정도 되려나. 이번년에 4학년 올라가는 애 치고는 작은 편 이었다. 그래도 금방 크겠지. 그런데 주변에서 들리는 말은 무슨 말 인지도 모르고 얼마나 답답할까. 애가 무슨 죄가 있어서. 괜스레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담임선생님도 오셨다. 분위기 상 알게 된 것도 얼마 안 된듯.
갑자기 정해진 이 상황이 나 같음 참 귀찮을 것 같다. 챙겨야 될 혹이 2개나 생겨버린 셈이니까. 하지만 싫은 표정 하나 안 하시고 말투도 선생님 같달까. 선생님 맞지만 말투에서 선생님이라는 강단이 느껴졌다.
8시35분이 되었고 어느정도 이야기도 되었고 일본어를 알려주라기 보다는 통역을 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통역을 할 줄 알면 더 좋다는 이야기가 이런 뜻 이었구나. 순차통역 시간만큼은 신경 써서 수업을 들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렇게 써먹을 때가 오다니.
나는 아이와 친해지기 위하여 먼저 인사를 걸었지만 부끄러운지 어머님 뒤로 숨어버렸다. 내가 말을 걸자 뒤로 숨어버려서 겸연쩍어서 어색하게 웃으며 이름을 물어보았지만 말해주지 않았다. 하지만 몇일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다.
복도를 지나 교실로 들어갔다. 복도에서 몇몇 선생님들과 학생들과 지나쳤다. 난 학교 다녔을 때 선생님 봐도 인사 안 했는데 여기 애들은 나 보고 어른이라고 인사한다. 고마워서 나도 따라 인사하고 복도에 계시는 선생님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초등학교 때에는 복도 폭이 꽤나 넓어보였는데 지금 보니까 고등학교 복도 폭이랑 별로 다른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복도 끝 문옆에 있는 신발장. 게임이나 애니 드라마에서 봤던 것 처럼 일본 초등학교는 신발장이 바로 붙어있구나. 그리고 계단을 지나 교실로 들어갔다.
교실에는 선생님에게 들었던 것 같이 40여명의 아이들이 자리에 앉아있었다. 선생님은 전학생이 왔다고 무턱대고 전학생에게 자기소개 하라고 시키는게 아니라 먼저 해외에서 온 일본어를 잘 모르는 친구라는 것을 이해 시키기 위해 반 아이들에게 너희들이 반대로 다른 나라의 학교를 가면 어떨지 상상해 보라고 한국에서 온 전학생에 대한 이해를 먼저 시켰다.
그리고 내 소개를 해 주셨다. 통역 선생님 인데 공부할 때는 방해 하면 안된다고 충고의 말씀 까지 덧붙이셨다. 나는 간단히 자기소개를 하고 아이의 옆자리에 앉았다.
첫날은 수학과 국어를 했다. 국어는 작문시간이 있었는데 우선 담임선생님이 읽어보라고 책을 가져다 주셨다. 우선은 책 내용을 통역해서 읽어주고 나중에 아이가 이야기를 만들면 그걸 번역해 주겠다고 얘기를 했다. 하지만 연필을 잡지 않는다. 내 이야기가 이해가 안 된것 같아서 나 같으면 이렇게 이렇게 하겠다고 알려주고 일부러 신경을 쓰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오셔서 반 애들은 이렇게 이야기를 만들었다고 이거 읽어보라고 반 애들이 만든 작문집을 건네주셨다. 공책중에 아무거나 잡아서 이야기를읽어주었다.
다시 조금 관심을 보이지 않자 작은 손으로 연필을 꽉쥐고 종이에 글을 쓰기 시작한다.
글을 다 썼는지 다시 멍하게 있기 시작했다. 나는 얘기를 잘 썻다고 칭찬해 주며 그 이야기를 일본어로 쓰고 일본어 발음을 적어주었다. 어느샌가 쉬는시간이 되었다. 반 아이들은 다른나라에서 전학온 새 친구에 관심을 보였다. 나와 아이는 삽시간에 반친구들에게 휩싸였고 그걸 본 담임선생님은 아직 화장실이 어디있는지 모르니까 아이에게 화장실이 어디있는지 알려주라고 반 아이들 두명에게 부탁했다. 아이들은 싫어하는 내색 없이 같이 가줄게 라고 하면서 아이와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
쉬는시간이 되자 어느정도 긴장감이 풀렸다. 얼른 적응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모르는 단어를 체크할까 싶어 전자사전을 열었을 때 였다. 뒷자리에 앉는 아이가 나 한테 정확한 발음으로 '최지우센세!!'라고 외쳤다. 헐.......한국어 배우지도 않았는데 발음이 왜이렇게 좋음? 그나저나 최지우는 왜 아는거임??????게다가 내가 가르치는 애 같이 낯을 가리지도 않아! 제미 친구중에도 이 이름이 있는데 여자한테만 쓰는 이름이 아니었군 흠흠. 나는 나한테 최지우라고 하면 최지우 한테 면목없다고 하며 이름이 뭐냐고 물어봤다. 아이들에게 나의 존재는 신기한 모양이다. 자기들 보다는 어른인데 담임선생님 보다는 어리고. 몇명의 아이들이 와서 나에게 한국어 해보라고 시켜본다. 안녕 같은 기본적인 걸 알려주고 아이들의 이름을 묻고 내 이름을 알려주자 어느새 쉬는시간은 지나가 있었다.
두번째 시간은 수학시간 이었다.
역시 숫자로 하는 거라 별로 어려운 것은 없었지만 이해를 돕기 위한 설명이 일본어 여서 그 부분을 설명하니까 금방 알아듣는다. 수학을 좋아하나? 그리고 약간 한국보다는 진도가 느린 것 같아서 쉬운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제 부터가 본격적으로 어려워지지. 나도 4학년 때 수포자가 아니었으면 수능을 쳤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수학시간은 무난하게 지나갔다.
수업이 끝나고 부교장 선생님에게 간단한 보고 같은걸 하고 집에 갔다.
눈이 쓸데없이 많이 와서 길거리가 짜증나게 되있었다. 그래도 금방 녹을 것 같아서 다행이었다.
알바 둘째날
수업시간 통역. 내가 일방적으로 말 했을 뿐 그 쪽에서 반응은 없었다.
이날은 체육이 있는지 모르고 정장을 입고 갔다. 학교 도착하자마자 땅을 치고 후회했다.
첫 수업이 끝나고 선생님이 연락장에 아이가 쓴 일기가 있다고 그걸 집에서 읽어보시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해서 아이의 일기의 통역을 부탁받았다. 역시 예상대로 반 친구들이 잘 대해주는 모양이다. 친구들 사귀기에는 문제가 없어보였다.
체육시간에 아이들 뛰어 노는거 보니까 참 대단했다. 눈 왔는데도 반팔에 반바지. 정말 추울텐데 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참 대견했다. 취직정장따위 춥다고 명함도 내밀 수 없었다.
두번째 시간이 끝나고 아이의 뒷자리의 옆에 앉는 아이 A가 나에게 프로필장을 만들어서 줬다. 너무 고마웠다. 아직 어린 아이인데 자기어필을 남에게 이렇게 할 수 있다니. 게다가 그림도 귀여웠다. A는 한자로 쓰고 가타카나로 읽는 내 이름이 신기했나보다. 몇번 발음해 보더니 몇번이고 내 이름을 외친다. 아무런 의미 없는 행동인데 마냥 귀여워 보였다. 나는 자기 프로필장을 만들어서 건네준 A가 고마워서 나도 프로필 장을 만들어서 건내주며 알고 싶은 한국어 있냐고 물어봤다. 귀엽다와 맛있다가 알고 싶다고 해서 그 단어들을 알려주고 있자 다른 아이들도 와서 한국어를 알려달라고 말 한다. C라는 아이가 먼저 자기 이름이랑 이런 이런 뜻 알고 싶다고 말 하자 조금 새침해 보이는 K가 자기는 C랑 똑같이 만들어 주면 된다고 하고 셋이서 내가 한국어 쓰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외국어가 어려워서 외우지는 못하겠지만 관심을 가져줘서 정말 고마웠다.
그리고 3교시가 시작할 시간이 아슬아슬 하게 다가와서 3명에게 안녕이라고 인사 하고 자리를 떠났다. A는 안녕이 아니라 내 이름 두 글자를 크게 외쳤지만 귀여워 보였다.
알바 삼일째
수업시간에 통역. 일방적으로 말 했을 뿐 아이에게 답변 없음.
난 아이와 친해지기 위해 쉬는시간에 공기를 같이 하려고 공기를 가져갔다. 하지만 아이에게 말 걸기 전에 친구들과 나가버렸다. 조금 아쉬웠지만 친구들과 잘 놀고 아이들을 밖에서 맘껏 놀게 하는 중간 쉬는시간이라는 시스템이 정말 좋아 보였다.
그리고 어째서인제 어제 만났던 C와K가 밖에 나가서 놀지 않았다. 하긴 눈이 와서 밖에서 놀면 신발 젖고 추울 것 같았다. 난 아이들과 얘기 하다가 공기가 생각나서 C와K에게 공기 하는 법을 알려줬다. 아이들은 공기를 처음 해보는지 내가 공기 하는걸 보고 깜짝 놀랬다. 하지만 하는 법을 알려주니까 그새 그 방법을 익혔다. 셋이서 공기 하는게 신기 했는지 주변에 아이들이 모여들었고 공기는 몇명이 모여서 팀을 짜서 하는 거라고 다른 아이들에게도 공기 하는 법을 알려줬다. 아이들은 처음에 못 하겠다고 했지만 괜찮다고 잘 할 수 있다고 격려해 주자 금방 따라했다.
팀을 짜서 공기를 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다 되서 나가야 했다.
C가 선생님 같은 편 하자 라고 말 해줘서 정말 좋았다.
알바 사일째
재량시간에 다른 아이들은 외부 강사가 와서 발표 준비에 필요한 강의를 듣고 질문 시간을 갖기 때문에 아이와 따로 일본어 공부를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반 아이들과 떨어지는 것을 극단적으로 싫어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가 어떻게 하고 싶다고 의사표현을 하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고개를 숙이고 눈을 마주치려는 내 눈을 피하는 것 그 뿐이었다.
반 아이들은 미디어실로 향하려고 했고 다른 반 담임 선생님의 지시에 따라서 줄을 섰다. 준비해 왔던 일본어 공부들이 아까웠지만 인솔하는 선생님에게 따라가도 되겠냐는 부탁을 하고 허락을 받았다. 우리도 같이 미디어 실로 가서 구니타치시의 역사 그리고 옛날과 지금 어떻게 다른지 이야기를 들었다.
다른 반 아이들도 같이듣는 수업이었는데 우리 둘의 존재는 매우 특이했나보다. 다른 반 애들이 여기를 보는 시선이 자꾸 느껴졌다. 하지만 원래 여기 있으면 안 되는 존재이기 때문에 될 수 있는 한 조용히 통역을 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종이를 보드에 받혀서 강의 내용을 한국어로 적어줬고 아이는 다 읽었다 라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바 오일째
국어책에 옛날말이 나오고 세로쓰기를 너무 오랜만에 읽어서 그만 울렁증이 일어났다.
과연 내가 했던 말들을 아이가 이해 했을까? 아무 말도 하지 않으니까 전혀 알 수가 없다. 나름대로 다 말한 다음에 정리해서 알려줬는데.
아이가 좋아하는 체육시간이 되었다. 하지만 아이는 체육복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 학교 규정 상 체육복을 입지 않은 아이는 벌로 그날 체육은 못하고 앉아서 다른 친구들 하는 걸 봐야 한다는 걸 담임선생님이 아이에게 전해주라고 그러셨고 난 그걸 전했다. 하지만 자기가 좋아하는 체육을 못 하게 된게 영 마음에 안드나 보다. 그날 체육시간 내내 줄넘기를 휘두르며 운동장을 싸돌아 다녔다. 여기로 와서 같이 친구들 하는거 보자고 줄곧 이야기 했지만 듣는 척도 안 한다. 다른 친구에게도 부탁해 봤지만 여전히 도망다닐 뿐이다. 그게 한시간 동안 이어졌다.
심지어는 수업시간 끝나고 다 같이 모여서 인사 하는데도 자기 혼자 줄넘기를 휘두르며 운동장을 돌아다닌다. 담임선생님도 인사는 제대로 하자고 혼내는 투로 말씀하셨지만 분위기 상 뭐라고 했을 지는 분명히 알았을 것 이다.
나는 자기 마음에 안 든다고 제멋대로 행동하며 남의 말을 무시하는 아이의 태도에 화가 났다.
중간쉬는시간에 체육관으로 가서 걸레를 이용한 놀이를 해야 했다. 나는 이것 저것 나서서 도와주는 T에게 놀이 방법이 써져있는 프린트를 받았다. 나는 아이에게 놀이 방법을 알려주기 위하여 아이에게 다가갔는데 여전히 체육시간 같이 도망다닌다. 이건 뭐 놀리는 것도 아니고. 누구 가지고 장난하나. 아이의 말없는 징징거림에 화가 났다. 속도를 내서 아이를잡고 화를 냈다.
"마음에 들지 않는게 있으면 말로 해! 그리고 내 말 안 듣는건 상관없지만 담임선생님 말씀은 들어!!"
아이는 나랑 눈을 마주치려고 하기는 커녕 고개 마저 반대편으로 돌려버렸다. 하지만 내 손은 발버둥 치는 아이가 도망가지 못하게 어깨를 잡고 있었기 때문에 아이의 얼굴 쪽에 손이 가 있었다. 손에 차가운 느낌이 들었고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는 뭐가 그렇게 싫었는지 눈물을 흘렸던 것 이다. 담임 선생님이 와서 아이에게 C와 같이 놀이를 하겠냐고 타이른다. 담임선생님의 상냥한 타이름에 내가 너무 했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겨우 4학년 되는 타지로 전학온 초등학생 일 뿐인데. 혼냈지만 마음이 가벼운게 아니라 너무 무거웠다. 내가 잘 혼낸건지도 잘 모르겠고(본인은 안 들었을 가능성이 크지만) 나는 중간쉬는시간이 끝나고 아이에게 바로 미안하다고 사과했다. 하지만 듣는 척도 하지 않는다. 이미 눈빛은 내가 원망스럽다는 듯이 변해있다. 우선은 담임선생님에게 오늘 있던 일을 말해보기로 하고 담임선생님과 상담을 하러 교무실로 들어갔다.
우선은 오늘 체육시간에 무슨일이 있었던 건지 설명을 하고 아이를 혼냈던 점에 대해 사과를 했다. 하지만 담임선생님도 안 될땐 안 되는 거라고 알려줘야 한다고 혼나는게 맞았다고 자기가 혼내봤자 무슨 말 인지 모르기 때문에 내가 혼내는게 이 상황에선 맞는 거라고 내 편을 들었다. 내가 한 행동이 틀린게 아니라는걸 확실하게 알고나서 마음이 놓였다.
알바 육일째
어제 울린 여파가 역시 있었다. 앉을 때도 등을 반 쯤 돌려 앉고 싫을 때 고개를 젓지도 않는다. 눈도 마주치지 않고 둘이 하는 일본어 공부는 질색을 한다. 나는 아이를 조금 가만히 내버려두기로 했다. 아이는 담임선생님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교실을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나랑 옆에 앉아있는게 싫은가 보다. 그런데 그 상황이 어이없으면서도 고등학교 때 싫어했던 애랑 짝 했을 때 내가 생각나서 재미있게도 느껴졌다.
고맙게도 나에게서 도망가는 아이를 반 애들이 잡아다 주려고 했다. 하지만 아이는 나에게 오지 않으려고 책상다리를 붙잡고 뻐팅겼다. 최후의 수단으로 간지럼을 태우고 아이를 번쩍 들어올려 자리로 데려왔지만 아이는 좀 처럼 자리에 앉을 생각을 안 하고 담임선생님이 돌아왔다.
담임선생님은 아이가 싫다고 하는 건 무리로 시키지 않는다. 일본어 공부 하는게 싫으면 친구들이랑 같이 조별활동 하라고 제안하자 아이는 바로 뒷자리에 앉아있던 그룹에 껴서 같이 그룹활동을 했다.
나는 아이에게 알려주려고 했던 일본어 정리를 마저 하려고 혼자 아이의 책상에서 정리를하고 있었는데 역시 아이들은 내가 신기한지 계속 말을 건다. 그 중에서도 U가 특히 나한테 관심을 보였는데 이것 저것 얘기 하다가 뜬금없이 선생님이 좋다고 그런다. 나는 애가 그냥 하는 소리이겠거니 나도 U가 좋다고. 이 반 애들 다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그러자 U는 나는 선생님만 좋아 라고 말 해서 뭐라고 말 해야 할지 몰라서 좋아하는 만화이야기를 꺼냈다.
그랬더니 남자애들이 소년만화들을 줄줄나열하는 걸 볼 수 있었고 특히 U는 에반게리온을 좋아한다고 했었다. 안 그래도 주말 내내 방에 틀어박혀서 에반게리온 극장판 시리즈를 독파 했는데 이런 우연이. 그런데 I는 U에게 에반게리온 얘기 하면 안 된다고 했다. 왜나면 너무 잘 알아서 얘기를 꺼내면 못 멈추기 때문에. 실제로 U가 에반게리온 얘기를 내가 꺼내자 멈출 줄을 몰랐다. U는 내가 잊어버리고 있던 등장인물의 이름을 알려주기도 했다. 심지어 파칭코 버전 내용 까지 다 알고 대사까지 다 알 정도 라고 하니. 역시 애들 때 좋아하면 좋아하는 것에 굉장히 빠지는 열정이 넘치는 게 아이들 다워서 보기 좋았다.
다른 아이들과 일본어로 신나게 이야기 하는 날 보고 아이는 뭐라고 생각할까? 그 전에 아이가 먼저 말을 걸어주면 나는 기쁘게 이야기 할 텐데.
쉬는시간이 되었다. 첫번째 쉬는 시간은 짧기 때문에 그대로 조별활동을 계속 했는데 아이는 독서카드를 만들러 도서실에 가기로 했다. 아이는 역시 나에게 거리를 두었다. 도서실에 갈 때도 나랑 저만치 떨어져서 걸었고 나는 일부러 그 거리를 좁히려고 하지 않았다. 그런데 왠일인지 도서실에 도착해서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찾을 때 아이는 왠지 신나보였다. 물론 나도 이 책은 어때? 이 책은 뭐가 있는데 라고 아이에게 계속 질문을 던졌지만 아이는 어려워 보였는지 고개를 흔들 뿐이었다.
그 때 였다. 만화책 코너에서 도라에몽 만화책이 있었고 나는 그걸 아이에게 보여주었다. 아이는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그걸 들고 다른 책을 고르러 도서실의 이곳 저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다른 책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동물도감이 있는 곳 까지 갔고 결국 그날은 아무 책도 빌리지 않았다.
2교시가 끝나고 중간 쉬는 시간이 되었다. 오랜만에 T가 한국어 해보라고 말을 걸었다. 나름 좋은 말을 알려준다고 좋아해 라는 말을 넣어서 T좋아해 라고 하자 주변에 몰려있던 아이들이 술렁술렁 하며 내 옆에 계속 있었던 U의 안색이 특히 좋지 않았다. 나는 분위기를 모면하기 위해서 U좋아해 라고 말 했지만 U는 슝 하고 자기 자리로 가버리는 듯 했다.
하지만 이내 나에게 와서 같이 중간 쉬는시간에 도둑과 경찰 같은 편 하자고 말해주었고 나는 기쁘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운동장에 나가자 어디선가 내 이름 두 글자를 크게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지 확인하지 않아도 A가 외쳤다고 단박에 알아차렸다. 왜냐하면 A는 내 이름을 알고 나서 내 이름 두글자를 외치는게 좋은지 아무 말 없이 이름만 외치는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아직 이름을 모르는 어딘가 K와 분위기가 비슷한 동그란 단발머리의 여자아이도 내 이름을 그렇게 외쳤다. 내가 놀래서 맞다고 하니까 둘은 신나했고 우리는 담임선생님이 있는 곳 으로 갔고 도둑과 경찰을 했다. U는 계속 내 옆에 붙어 있었고 거의 페어 같이 활동 했다. 우리 팀이 도둑인 줄 알고 선생님 이리오라고 진심으로 외쳐주기도 했다.
몇 년만에 하는 놀이인지 내가 이렇게 달려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도 도둑이었던 K가 정말 빨리달리는 모습을 보고 잡고 싶어졌다. 나도 달려보았지만 달리기가 빠르고 다리가 긴 K는 아무에게도 잡히지 않았다.
어느 샌가 중간쉬는시간이 끝났고 U와 H와 함께 교실로 돌아갔다. H는 계속 잡히기만 해서 이번 도둑과 경찰 때 너무 못했다고 자책 했다. 하지만 나는 열심히 했다는 게 중요 하다고 내 나름대로 위로를 해 줬지만 그게 H가 원하던 말이었는지 아니었는지 잘 모르겠다.
U는 어느 샌가 내 왼쪽팔에 팔짱을 끼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선생님들도 아이들에게 둘러쌓여서 팔짱 끼고 손 잡고 가는걸 많이 봤기 때문에 별로 문제될 일 같지는 않아서 냅두었다.
알바 칠일째
아이는 여전히 나에게 화나있는 상태였지만 나는 눈새인 척 하고 신경쓰지 않기로 했다. 학기 마지막이라서 그런지 과목마다 시험을 많이 친다. 1교시는 국어시간 이었는데 교실에서는 받아쓰기 시험을 칠 예정이었다.
하지만 아이는 이곳에 전학온 지가 1달도 안 되고 일본어를 배우고 있는 과정이기 때문에 시험을 칠 수 없었다. 그래서 다른 반 친구들에게 악보를 빌려서 6학년 송별회 때 연주해야할 리코더 곡을 연습하라고 담임선생님이 지시를 내려주셨다. 하지만 리코더를 연주 하기 싫은지 아이들이 악보를 빌려줘도 연습을 안 했다고 한다. 아마 할 줄 모르고 다른 사람들은 다 할 줄 아는데 자기만 할 줄 모르니까 처음부터 포기를 하는 것 같았다. 시작도 하지 않고 포기부터 하는 아이가 바보 같았다. 하지만 아무리 회유를 하고 말을 걸어도 싫다는 말도 좋다는 말도 눈도 마주치지 않은 채 실랑이는 1교시가 시작될 때 까지 계속 되었다.
1교시가 시작되고 다른 아이들은 받아쓰기 시험을 아이는 교실 담당과 특별활동 담당을 정해야 했다. 나는 수업이 시작하기 전에 번역해 두었던 특별활동 프린트의 내용을 아이에게 보여주었지만 아이는 읽는 척 하더니 이내 프린트에서 시선을 떼고 필통을 돌리기 시작했다. 다시 몇 번이나 회유했지만 역시 관심없어 보이는 것 같았다. 내가 권유를 해서 그런가? 라는 생각이 들어서 아이를 잠시 내버려 두었을 때 였다. 담임 선생님이 오셔서 다른 아이들이 체크한 특별활동 용지를 아이에게 보여주셨다. 아이는 다른 아이들의 용지를 참고를 하려는 듯 다른 아이들의 용지를 훑어보았다.
2교시가 되었고 수학시간 이었다. 수학시간도 시험 시간이었는데 첫 문제가 일본어 문제 여서 아이는 조금 당황하는 듯 했다. 하지만 내가 문제 뜻을 알려주고 보기를 알려주자 아이는 답을 적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해가 조금 부족 했는지 답을 결국 틀리게 적었다. 모르면 물어보면 될 것을 이라고 생각 했지만 왜 틀렸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기 때문에 일부러 가만히 있었다.
결국 아이는 일본어 문제 부분을 틀리고 말았다. 왜 그렇게 되는지 친구들이 설명해 주었지만 역시 언어의 문제 때문에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들었고 결국 하는 수 없이 내 쪽으로 와서 설명을 듣고 답을 고쳤다.
시험이 끝나고 수업을 계속했다. 하지만 아이는 도통 책상 줄을 맞출 생각을 안 했다. 결국 수업 시간 내내 분단에서 다른 아이들이 나갈 때 마다 아이를 돌아서 나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나는 책상을 앞으로 당기라고 말했지만 아이는 여전히 눈도 마주치지 않는다. 내가 담당하고 있는 아이가 눈치도 없고 남들에게 피해만 주고 있다고 생각하니까 속이 상했다. 어째서 이렇게 자기 밖에 생각하지를 못하는 걸까? 결국 자기 자신만 생각해서 하는 행동은 자기한테 독이 되어 돌아올 뿐 인데. 아이에게 한없이 친절한 담임선생님과 반 친구들이 신기할 정도 였다.
알바 팔일째
혹시 아이가 여성스러운 사람을 좋아하나 싶어 여성스럽게 입고 학교에 가봤다. 하지만 수업 들어가기 전에 들었던 담임선생님 한테 들었던 말은 아이가 자기는 모든 일본어를 알기 때문에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하지만 어제 수학 시험 칠 때 파악 했기 때문에 아이의 센척이란 것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가 그만큼 학교 생활에 열의를 가지고 임하고 있다는 것은 기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찌 됐든 이 아이는 앞으로 일본에서 살아야 하기 때문에 일본어를 공부할 필요가 있고 나중에는 혼자서도 일본어로 된 수업을 들을 수 있어야 되기 때문이다. 아이가 내비친 나에게로의 반항심이 공부 할 마음으로 이어지는 것 같아서 왠지 다행이었다. 하지만 어느정도 거리는 두기로 했고 오늘은 아이에게 먼저 인사 하지도 아이가 먼저 나와 거리를 떼기 전에 내가 먼저 거리를 두고 앉았다.
1교시 어제에 이어서 또 수학시간에는 시험을 쳤다. 자리를 시험 대형으로 바꿔서 시험을 치는데 나는 칠판이 있는 쪽으로 자리를 당겨 앉았다. 아이는 내 쪽에 오기 싫은지 내 반대쪽으로 책상을 당겼고 나는 아이의 책상을 가버리라는 듯이 내가 있는 반대편 쪽으로 당겨버렸다.
그리고 시험이 시작됬다. 수학시간에 아이의 옆자리에 앉는 N은 흥얼거리기를 좋아한다. 오늘 시험시간에도 계속 흥얼거리며 시험을 치는데 나도 초등학교 때 수업시간에 자주 흥얼거렸기 때문에 옛날 생각 나면서도 상황을 즐기는 것 같아서 귀여워 보였다. 오늘은 시험 시간인데도 상관하지 않고 노래를 흥얼거렸지만 시끄럽다기 보다 귀여워 보였다.
나는 개인적으로 공부해야 할 것들을 꺼내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담임선생님이 도와달라는 눈치를 보내셨다. 궁금해서 가보니까 아이는 역시 일본어에 막혀있었다. 말로 되 있어서 일본 아이들에게는 숫자로 계산하는 것 보다 더 간단한 문제일 텐데. 나는 아이가 모르는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고 아이가 원하는 곳만 알려주고 다시 내 공부에 몰입했다. 그리고 아이의 시험이 다 끝났을 때 담임선생님은 직접 만든 단어 카드를 아이에게 내밀어서 이게 맞는지 확인하고 맞으면 쓰라고 했다. 구태여 담임선생님이 말 한 것을 통역하지는 않았다. 아이가 원하지 않는다면 그저 가만히 있을 뿐 이다. 내가 알려줘 봤자 아이는 듣지 않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2교시가 되었고 체육시간 이었다. 아이는 반 아이들과 다 같이 옷을 갈아입는걸 부끄러워 한다고 한다. 다들 나가면 옷을 갈아입는다고 하는데 특별 취급도 이런 특별 취급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U와 함께 운동장으로 나가서 다른 아이들의 줄넘기 하는 모습을 보고 있었다. 아이들은 정말 운동을 잘 했다. 2단 뛰기도 가볍게 하고 보통 하는 줄넘기도 너무 쉽고 빠르게 했다. 심지어 x자도 연속으로 할 줄 아는 아이도 있었다. 가끔 줄넘기를 돌리는 아이들이 있었는데 맞으면 아프다고 장난을 치고 놀고 있었다.
그 때 였다. 교실을 보던 T가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알아차렸다. 그렇다 수업이 시작하기 일보 직전인데 아이는 아직 운동장으로 나오지 않은 것 이다. 나는 T와 함께 교실로 들어가서 T의 일본어를 통역했다. 하지만 아이는 외투를 무릎까지 내리고 자기의 안의 모습을 절대로 보여주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담임선생님과 다른 몇명의 아이들 까지 교실로 들어왔고 교실에 있을거면 공부, 밖에 나가려면 체육복을 입고, 체육복이 없으면 견학 해야 하는 것을 알려줬지만 아이는 나에게서 도망 갈 뿐 이었다.
결국 아이는 옷을 갈아입지도 밖에 나가지도 않았다. 그저 같은 자리에서 겉옷을 다리 까지 내리고 쭈그려 앉았을 뿐이다. 살짝 보이는 아이가 안에 입은 옷은 체육복 이었다. 하지만 체육복에 무언가 문제가 있어서 안 나갔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 않으면 체육을 좋아하는 아이가 밖에 안 나갈 리는 없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와 최대한 거리를 두고 앉아서 아이에게 지금이라도 밖에 나가도 된다고. 혹시 체육복에 문제가 있으면 도와주겠다고, 아니면 교실에서 공부 해야 한다고 말했지만 아이는 책상 밑에 숨어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아마도 내가 보이지 곳으로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 상태가 2교시 끝나고 중간 쉬는시간 까지 지속 되었다. 나는 혹시 아이가 아무도 없으면 옷을 갈아입지 않을까 해서 나가 있을 께 옷 갈아입으려면 갈아입어 라고 말 하고 잠시 교실을 나왔다. 그랬더니 정말 아이는 옷을 갈아입었다. 자신이 싫어하는 것과는 소통하지 않으려는 아이의 모습을 보고 참 바보 같으면서 안타깝게 느껴졌다. 아무리 자기가 좋아하는 친구라도 자기가 싫어하는 것을 강요하면 결코 하려 하지 않는다. 강요 하면 울어버린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 의견을 말 하는 것도 아닌 너무나도 수동적인 모습에 또 아이에게 실망했다. 아이는 교실 뒷문에서 캐비냇의 문을 열고 닫는 걸 반복 했다. 내가 아이의 나이 때 선생님 앞에서 그런 행동을 했으면 바로 혼나고 아이 같이 반항 했다면 얻어 맞았겠지. 아이가 싫어한다고 무조건 그 의사를 들어주는 것도 방법이 아닌데.
중학교 때 학원 선생님 한테 들었던 "네가 그렇게 행동하면 욕 먹는건 너희 부모님이야"라는 문장이 머릿속에 선명히 떠올랐다. 그 때 당시는 "상관없어요"라고 말 했지만 어째서 인지 씁쓸함이 물밀듯이 몰아쳤다. 그리고 그 문장의 뜻은 점점 나이를 먹을 때 마다 속뜻이 쓰라리게 전해져 왔고 지금 아이를 보고 있을 때 내가 속으로 그렇게 생각 하고 있는 걸 보면 참 아이러니 하다고 생각 했다.
오늘 아이는 집으로 가면 통역이 필요 없다고 말 할 것이다. 하지만 내일 배우는 과목들은 내가 없으면 아이가 이해하기 어려운 과목들 이기 때문에 내가 먼저 설명하기 전에 아이가 알 리는 만무하다. 게다가 아이는 학교에서 수업을 못 따라가고 있다고 소문이 나 있는 모양이다. 내일은 오늘보다 더욱 거리를 띄우고 아이가 먼저 모른다고 말 하기 전 까지 내 할일을 해야겠다.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이 일지를 바탕으로 부모님과 상담을 해야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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