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일이 있고 나서 결심한 대로 아이가 질문하지 않으면 나도 답해주지 않으리라 라고 굳게 마음을 먹고 학교를 갔다.
앞으로 방침을 조금 바꾸겠다고 1교시 수업 시작하기 전에 담임선생님에게 말 하려고 했는데 아침에 바쁘신지 오늘은 상담실에 오지
않으셨다. 다행히도 전에도 이런 적이 있어서 수업 시작할 때 맞춰서 교실로 올라갔다.
오늘도 교실에 들어가자 마자 인사를 하고 아이의 옆에 앉았지만 일부러 약간 거리를 띄워 앉았다. 하지만 아이는 그걸
알아차렸는지 어쨌는지 변함없이 나에게 등을 돌려 앉았다. 나는 아이에게 한국어로 인사하는 대신 앞으로 내가 대하는 태도가 바뀔것
이라는 것을 알려줬다.
"앞으로는 모르는거 있으면 히데토시가 질문해. 일본어 잘 하니까 어차피 수업 내용 다 알지?"
나는 일부러 아이가 기분나쁘게 들으라고 비꼬아서 말 했다. 하지만 아이는 말을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반응이 없다.
정말 반응이 없으면 내 취업준비 공부나 하려고 했지만 돈을 받고 하는 일 이기 때문에 아이가 질문은 하지 않더라도 언제 필요하게 될지 모르는 내용들은 다 종이에 적어두고 필요하게 되면 아이에게 읽히려고 종이에 적어두었다.
아침 조회시간이 끝나고 자기 이름이 몇번 나왔는데도 아이는 자기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나에게 질문하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이 음독카드를 나눠주고 봉투를 나눠주고 뭐하라고 시켰는데도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결국 담임선생님이 아이에게 와서 쓰는
거라고 제스쳐로 알려주고 친구 걸 예시로 보여주고 나서야 아이는 손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정도는 내가 알려줬어야 했나? 아니
담임 선생님이 아이를 너무 위하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내가 해야 할 일을 안 하고 있는 것 같아서 담임선생님 한테
죄송했다. 그러던 중에 어제 정해야 했던 교실 담당일을 다른 친구가 하라고 부탁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일본어를 전혀 모르는 아이는
그걸 알아들을리 만무했다. 나는 친구가 하는 말을 아이에게 전했다. 아이는 알아들었는지 어쨌는지 반응이 없었지만 수업시간이 끝나고
칠판을 지우는 걸 봐서는 이야기를 듣긴 들었던 것 같다.
1교시는 도덕, 2교시는 독서시간이었다. 1교시에 아이들은 조별로 자신이 읽어야 할 부분을 연습하고 조별로 나와서 읽어야
했는데 히라가나 밖에 모르는 아이가 읽을 수 있을 지 담임선생님도 같은 조인 아이들도 나도 걱정이 되었다. 같은 조 아이들에게
어느 부분을 읽는지 일단 물어 보았다. 첫 주에 아이에게 읽어주었던 이야기 였다. 담임 선생님이 아이가 속해있는 그룹 아이들과
이야기를 끝내시고 나에게 와서 제목이라도 읽으라고 하는 이야기를 전해 달라고 하셨다. 하지만 아이는 고개를 움츠리며 피하려고만
했다. 하지만 나는 "괜찮아 할 수 있어 어떻게 읽는거지?" 라는 격려의 말 대신 "못 읽는구나. 그럼 선생님이랑 조 애들한테
따로 하라고 말 할게" 라고 말 하고 아이를 제외한 같은 조의 다른 아이들에게 그 말을 전했다. 하지만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에게
같이 하라는 말을 들었기 때문에 망설여했다. 그리고 결국 담임 선생님에게 물어본 결과 본인이 하고싶으면 하되 못 하겠다고 하면
강요하지 말라고 하는 충고를 들었고 나는 다시 한번 아이에게 이거 읽을 수 있냐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교실 앞문 쪽으로 가서
앞문을 열면서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 담임선생님은 화가 나셨는지 문 닫고 이리 오라고 하셨다. 나는 아이를 데려오려고 아이에게
다가가려 했지만 같은 조 아이들이 교과서를 가지고 아이에게 다가가서 읽어보라고 시키는게 더 빨라서 다가가지 않기로 했다.
결국 아이는 친구들이 같이 하자고 먼저 손을 내밀어 주었던 친구들의 말 조차도 피하는 꼴이 되었다. 그렇게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쉬는 시작이 시작되었다.
도서실에 가기 위해 줄을 섰어야 했는데 1교시 쉬는 시간은 짧기 때문에 놀면 안 되는 걸 몰랐다. 나는 쉬는시간에 주변에
모여든 오랜만에 학교를 온 K와 한번도 사진을 찍은 적 없는 C와 U 그리고 M과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했을 때 였다. K가 왠지
주변을 서성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서 난 K에게 인사를 하고 국어시간에 무슨 조가 되었는지 물어보고 발표 잘 하라고 하면서
아이들과 같이 사진을 찍으려고 했다. 하지만 좀처럼 아이폰이 조작되지않아서 시간이 지체되고 말았고 단체사진은 한장 밖에 건지지
못했다. 교실에서 특히 1교시에는 휴대폰을 꺼내지 않는게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늦게 준비가 된 내 주변에 있던 아이들은 결국
선생님 한테 혼났고 도서실로 이동했다.
아이는 목요일 2교시 때 마다 왠일인지 반응을 잘 한다. 싫다고 고개를 저을 뿐 이지만 그정도면 평소 보다 좋은 반응이기
때문에 그래도 희망이 보이기 때문에 기분이 좋아진다. 그리고 책을 고를 때는 반 아이들이 일본어를 모르는 아이를 위해서 이런 책은
어떨까 이런 책은 일본어가 공부되서 괜찮을 것 같다 이 책은 한국이 나와서 배우기가 쉬울거다 등등 아이들이 나에게 이것 저것
책을 추천해 준다. 나는 아이들이 추천해 준 책과 내가 어렸을 때 좋아했을 법한 그림책을 가지고 아이에가 다가가서 책을 보여줬다.
아이는 대부분의 책이 마음에 안 든다고 고개를 젖고 도망가버렸지만 개중에 마음에 든 책이 있었는지 잠시나마 훑어보거나 잠깐
읽었던 책도 있었다.
아주 잠깐이고 아주 조금이었지만 아이가 나에게 조금은 마음을 열어줬다는 것과 반 아이들이 나를 항상 도와주고 아무것도 해준
것이 없는데 잘 따라주는게 너무 고마웠다. 내가 도와달라고 말 하지도 않았는데 자기가 먼저 책을 가지고 와서 책을 추천해 주고.
키는 나보다 작고 나이도 한참 어린 아이들이 이렇게나 남을 먼저 생각할 줄 아는 힘을 가졌다니. 너무 대단하고 이렇게 키운
부모님들과 담임선생님이 정말 대단해 보였다. 덕분에 오늘은 무사히 알바를 끝낼 수 있었다.
독서 시간이 끝나고 담임선생님은 도서실에 책을 안 꼽고 온 아이들을 찾고 있었다.
그 책들은 아이들이 나한테 아이에게 읽어주라고 추천해 준 책 들이었다. 어떻게 할 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이 중간쉬는시간에 체육하러
나갔을 때 담임선생님과 오늘 있었던 일을 정리 하는 과정에서 사실 그 책은 그러면서 말을 했지만 담임선생님은 자신만의 논리가
있으신지 그것 만큼은 양보를 하지 않으셨다. 아이들이 꼽아놓지 않았으면 내가 꼽아놨어야 했는데 아이들에게 미안해 졌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거의 매일 같이 담임선생님은 어머님과 상담전화를 하는 것 같았다. 아직은 내가 어머님에게 전화할 시기가 아닌 것 같았다. 그게 얼마 안 있어서 올 지도 모르겠지만 일단 우선은 아니었다.
일을 끝내고 교무실로 갈 때 중간 쉬는 시간을 끝내고 돌아오는 아이들과 마주치며 인사를 하고 K와도 만났다. K는 다음에
만나면 같이 사진 찍자고 했고 손을 맞대며 인사를 했다. 밖에서 놀았는지 손이 차가워서 양손으로 마주잡아주고 다음주에 보자고
인사 하고 나는 교무실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