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사

2019년을 마무리하는 오키나와 여행 -8일째(타케토미섬)-

진탱 - 2020. 1. 1. 2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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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걸 보려고 타케토미 섬에 왔구나.

 

타케토미 섬은 이시가키 섬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다. 길어야 배로 15분 정도 걸리는 거리, 날씨가 아무리 안 좋아도 왠만하면 결항하는 날이 없다고 한다. 

타케토미 섬에서 하고 싶었던 건 자전거타기, 예쁜 바다 보기 였는데 결과적으로 두 개 다 하고 왔다. 
다행히 오늘은 해가 나온 날이라서 따뜻한 햇살을 잔뜩 받고 예쁜 에메랄드 색 바다도 잔뜩 봤다. 해가 뜨면 이런 색이었구나. 확실히 어제 선장님이 바닷물 탁하다고 말씀하셨던 이유를 알게 됐다. 

어제 코하마 섬 자전거 일주는 도전! 수련회! 체력단련! 이런 느낌이었다면 

오늘 타케토미 섬 자전거 일주는 힐링, 휴식, 휴일 이런 느낌이었다. 고갯길 자체도 코하마 섬에 비해 고갯길이라고 할 만한 길도 없고ㅋㅋㅋ(어제 과하게 단련됨) 오늘도 전동 자전거를 타서 조금만 힘을 줘서 달려도 알아서 잘 달려줬기 때문에 자전거 타는게 전혀 힘들지 않았다. 

양 옆으로 2-3미터 정도 높다랗게 뻗은 나무들 사이로 달릴 때 한국에서도 이런 코스가 있지 않았나? 그런데 다른 이유는 뭘까? 라는 생각을 했다. 내가 달리는 코스에만 집중할 수 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말 그대로 자연 속에서 자전거를 타는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조용한 것. 물론 중간 중간 일본어는 들리긴 하지만 (방해됐다.) 사람 자체가 그렇게 많지 않아서 조용하게 있을 시간이 사람 소리 듣는 시간 보다 더 많았던 것 같다. 

특히 아이야루 해변은 정말 가길 잘 했다. 
사실은 자전거로 가는건 비추하는 길인데 (길이 험함) 모험심이 크게 발동해서 가게 됐다. 모험심 때문에 가긴 했는데 괜히 엄한 거 (예:묘지) 보는거 아닌가 했는데. 아자마 선선비치 보다 조금 파도가 약하고 따뜻한 느낌의 바다였다. 아자마 선선비치가 사람이 더 적었지만 거기보다는 파도가 조금 더 약하고 해변가에 산호가 있고 모래 질 자체가 까끌까끌 & 알이 더 컷다. 이번 오키나와 여행에서 갔던 바다들은 잊을 수 없을 것이다. 

타케토미 섬에서는 소키소바랑 스팸튀김, 항구 매점에서 산 주먹밥을 먹었다. 
소키소바랑 스팸튀김은 생각한 그대로의 맛이었지만 (그만 먹고 싶다. 그치만 먹게 되면 안 남기고 잘 먹음,) 2020년 1월 1일 일본 설날 첫날이라고 가게에서 세벳돈을 주셨다. 행운을 상징하는 5엔과 함께 쥐 모양 디저트! 조심해서 한국에 가지고 가야지. 설날 특별 서비스가 새해 느낌이 들고 정말 새로운 기운이 들어오는 것 같아 기분이 좋다. 

점점 시간이 지나면 지날 수록 하늘이 개어졌다. 
해변도 신발 벗고 바닷물에 발을 적시며 걸어보기도 하고, 자전거로 신나게 달리기도 하고, 자연 속에서 여유를 만끽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정말 끝이 없다. 해가 뜨니까 이제는 저녁 노을이 보고 싶었다. 타케토미 섬 해변에서 조용하게 보고 싶었는데 배 시간 때문에 그럴 수는 없었다.

아쉬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항구 주변 긴의자에 누워 맑은 하늘을 봤다. 하늘만 봐도 너무 재미있었다. 마음이 깨끗해지는 기분이 참 좋았고, 리프레쉬 하면 앞으로의 계획이나 목표가 척척 세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아무 생각이 안 들었다. 그런데도 마음이 잔잔해지고 더 단단해지는 신기한 기분이었다. 사람이 이래서 여유를 갖는게 중요하구나. 

이번 여행에서는 못 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에 도전하고, 스스로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면서 자신감이 가득 차는 기분. 그리고 머릿속에서 끊임없이 꼬여있던 생각들이 정말 깨끗하게 지워지고 분노와 불안 대신 여유가 가득 채워지는 느낌. 이 기분을 느끼기 위해 오키나와, 야에야마 제도에 왔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따뜻함에 대한 감사함을 알게 됐다. 날씨가 좋으면 자연스레 사람은 기분이 좋아져서 너그러워 지기 마련이니까. 겨울에 따뜻한 나라에 가는 게 왠지 연례행사가 될 것 같다. 

타케토미 섬에서 저녁 노을을 못 보고 와서 아쉬운 나머지 이시가키 항에 앉아 석양을 봤다. 
이런 표현 쓰면 촌스럽지만 석양의 강렬한 빛이 나한테 에너지를 채워주는 것 같았다. 아주 잠깐 밖에 안 되는 시간이지만 파도소리를 들으며 노을이 하늘을 물들이는 경치로 오늘 하루를 마무리 하길 잘 한 것 같다. 

타케토미 섬의 주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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