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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http://d.hatena.ne.jp/aerodynamik/20090601/p1
■[Perfume] Perfume의 메이저 데뷔를 둘러 싼 Amuse와 도쿠마의 관계 그리고 도쿠마의 목적을 고찰하다@Original Confidence
2008/02/18호
Perfume이 뜨는데 일조한 한 사람이 말하는 대박의 철학
「열의를 가진 젊은 인간의 후원자가 되 주는 것이 "어른"인 스텝이 다 해야 할 역할」
시노기 마사히로씨(TJJC사 집행간부 제작선전본부장 대리)
Original Confidence 2008/02/18호에 개제 둰 Perfume의 소속 레코드 회사인 도쿠마 재팬 커뮤니케이션즈의 이사 제작선전본부장 대리(현 제작본부본부장)인 시노기 마사히로씨의 귀중한 인터뷰.
좀 시간이 지난 것 이지만, 주간지 인데도 5000엔 이나 하고 엽계지 인데도 중고 시장에는 잘 나오지 않아서 이제서야 겨우겨우 입수. 이걸 모토로 Pefume의 메이저 데뷔를 둘러싼 경위와 도쿠마의 목적을 보자.
⊙애당초 왜 Perfume은 도쿠마 에서 데뷔 한것인가.
Perfume측 에서 「도쿠마 에서 메이저 데뷔」란 발표가 났을 당시, 팬들은 상당히 불안했다고 한다.
도 쿠마는 기원이 되는 미노루 폰 시절 부터 센 마사오를 필두로 하는 엔카와 도쿠마 선전 그룹 시절 부터 지브리 관계의 이미지가 아직도 강하다.(2001년에는 제일흥상에게 주식양도 되었지만, 지브리 음원은 아직도 도쿠마에서 나오고 있다.)그러한 회사가 아이돌을 팔 수 있을 것 인가? 라는 것은 당연히 불안 했다.
당시 Perfume과 함께 Amuse의 BEE-HIVE 프로젝트에 소속되어 있던 Buzy와 Boystyle 을 보자면, Boystyle은 2002년, Buzy는 2004년에 테이치크엔터테인먼트의 산하에 있는 Imperial Records에서 CD데뷔/메이저 데뷔를 했다.(덧붙여서 BEE-HIVE활동이 시작 되기 전의 Color는 Warner Music Japan)
그러나 같은 시기의 Perfume은 Imperial Records에서 CD를 낼 수 없었고, Amuse와 Culture Convenience Club에 의하여 프로젝트를 위하여 만들어 진 인디즈 레이블 BEE-HIVE 코드 에서 2003년 8월에 「스위트 도넛」을 발매 하게 된다.
Perfume은 왜 Imperial Records에서 데뷔하지 않았던 것 일까. 혹은 데뷔하지 못 했던 것 이었던 것 인가. 진상은 지금도알 수가 없다.
Perfume 이 맨 처음 야스타카와 레코딩 했던 것은 세 곡. 키노코의 토크와 라이브를 선보이는 타이밍 에서 추측해 보면 「모노크로」와 「레시피」「도넛」이거나 혹은 히로시마에서 가지고 올라온 「제니」이다. 이런 것 들의 음원과 히로시마에서 이제 막 나왔던 세 사람을 보고 메이저 데뷔를 시킬 가치가 없다고 판단 한 것은 Amuse 인가 Imperial Records인가.
어쨋든 Perfume은 메이저 데뷔를 못한 상태로 BEE-HIVE레코드 에서 2장 이나 릴리스가 이어졌고, 메이저 데뷔를 시켜줄 곳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던 Perfume스텝이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 그 시노기 씨.
-Perfume을 담당하는 것이 된 경위는?
시 노기 : Perfume은 어뮤즈의 소속 탤런트로, 저는 현재의 회사 전에 리와인드 레코딩 이라고 하는 어뮤즈와 빅터 시가 공동 출자 하여 만든 회사의 제작 부장으로 있었습니다. 그 당시 부터 알고 지냈던 어뮤즈의 스텝 세 사람이 "어떻게 해서라도 팔고 싶은 유닛이 있다" 라는 말을 하며 저에게 상담을 하러 왔던 것이 발단 이었습니다. 04년9월의 일 입니다.
-이미 인디즈로 활동을?
시 노기 : 나카타 야스타카의 사운드 프로듀서로 'BEE-HIVE레코드'라고 하는 인디즈 레이블 에서 이미 CD를 세장 발매 하고 있었습니다. 테크노 사운드를 씌운 근미래형 아이돌 이라는 포지션 으로, 아키하바라의 코어한 층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노기 씨와 Amuse/Perfume스텝을 이어주는 것, 그것은 Re-Wind Recordings였다.
Re-Wind Recordings는, Amuse와 빅터엔터테인먼트의 공동출자로 1999년에 만들어진 스트릿 계열 음악에 특화된 전략을
내 세운 제작회사. 직접 받은 인상으로는 스트릿 이라고 하기 보다, 호소노 하루오미가 주재인 Daisyworld Discs, 시너지 기하학이 사라진 뒤 제 2기 데이지의 인상이 강했다. 「Hosono Box」나「Pre-YMO「InDo」같은 것도 여기서 나왔다.
시노기 씨는 와타나베 프로를 거쳐서 토에이EMI에서 시이나 링고를 데뷔 시킨 후, 제작부장으로서 Re-Wind로 옮겨서, 여기서 Amuse/Perfume 스텝 과의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 밖의 이 회사는 2002년에 해산.*1 그 후 도쿠마로 옮긴 시노기씨를 Perfume 스텝이 의지하고 있었다.
Amuse 관련 회사 로서의 인맥, 그리고 전 Re-Wind 라고 하는, 어느의미로「뾰족한 음」으로 이해를 나타내는 사람, 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중요했을 것 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Imperial Records에 없었던 점 일지도 모른다.
⊙도쿠마 내부에서의 평가와, Amuse 스텝의 정열
- 들어보고 어떻게 느꼈습니까?
시 노기 : 솔직히 직감이 작용 했다던가, 확신이 갔다 라는 둥의 말도 안되는 게 아니라(웃음). 세대도 다르고, 솔직히 저희 세대는 이해하기 힘든게 맞는 말 이죠. 그래서 당사의 편성회의 에서는 여러가즤 의견이 나오겠구나 라는 걸 예측 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음을 들어보고, 그리고 신주쿠나 아키하바라 등에서 그녀들의 라이브를 몇 번 보러 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단이 섰던 포인트는?
시 노기 : 상담하러 와 주었던 어뮤즈 스탭들의 정열 이었습니다. 이게 전부 였을 지도 모릅니다. 구 세대의 가치관 만으로 Perfume을 평가 해버린다면 본질이 보이지 않지요. 마지막에는 "재밌으니까, 해 봅시다" 라는 이야기로(웃음). 그렇게 사내 회의 에서 말 했던 걸 기억 하고 있습니다.
시노기 씨를 설득햇던 것은, 초대 치프 매니저 였던 고 나카무라 신이치 씨, 초대 매니저였던 이시이씨, 그리고같은 년에 Amuse에 막 입사 했던 2대 매니저 야마모토 시로 aka 못상 이렇게 세 사람.
세 사람의 정열이 , 시노기 씨를 경유하여, 엔카와 지브리 였던 도쿠마를, 최종적으로는 "재밌으니까" 라는 이유로 움직였다. 거기엔 시노기씨의 '어른' 으로서 젊은이들의 정열을 받아들이는 법이 있었다.
⊙젊은이들에게 맡긴다고 하는 것.
-이해가 안 되는 것을 추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시노기 : 회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여태까지의 경험치와 실적을 바탕으로 "어른의 해석"을 해 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예 를 들면 이번 Perfume은 테크노 사운드가 특징 인데, YMO의 테크노를 현재의 10대는 모르니까 받아들일 것 인가, 라는 해석이나 이론을 붙이고 싶어 하지요. 확실히 그런 것도 필요 하지만, 감성을 모두 이해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은 정열을 가지고 열심히 임하는 스텝의 마음을 느끼고, 이해가 안 되는 문화를 받아들일 용기도 필요 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열의를 가진 젊은 인간의 후원자가 되 주는 것이 '어른' 스텝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닐 까 생각 합니다.
Perfume 은 '아키바'나 '근미래'가 키워드인 유닛 이기 때문에, 당시의 츠쿠바 익스프레스 개통 으로 타이업 된 '리니어 모터 걸'(메이저 데뷔 곡 타이틀) 이라는 전개는 어떠한가 라던가, 저도 몇 가지 사견을 정리하여 스텝에게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총합 프로듀서도 아닌데 주제넘게는 못 하고, 기본적으로는 젊은 사람들 에게 맡겼습니다.
-프로듀서가 모든 것을 통괄 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 노기 : 아니었어요. 음 이나 PV영상, 방향성 등을 분담하여 각자의 분야의 스텝이 주장을 내세웁니다. 나카타 야스타카 씨도 다른 인터뷰 에서도 말했지만, Perfume에게 누가 프로듀서 인지 모르겠다고(웃음). 그리고 기무라 카에라 씨의 라디오 라던가 '아키바'라고 하는 가치관에도 통할 것 이라고 생각 하는데, iTunes나 인터넷 게시판 이라고 하는 Web의 세계를 통해 '인기가 늘었다' 라는 것이 가능 한 것도 이 시대의 특성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구 세대의 추진 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러한 시대감각을 민감하게 캐치하는 젊은 스텝을 밑에서 지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erfume이 층쿠나 아키모토 야스시, 코무로 테츠야와 같은 총괄 프로듀서를 갖지 않고, 각 분야 마다 젊은 스텝의 집합체로 있을 수 있는 것은, 시노기 씨의 이러한 생각에 의한 것 일까.
게다가 '근미래'전략에 대해서 중요한 발언.
테크노 팝 노선을 깐 것은 아마도 Amuse 신입발굴/육성담당인 전 주시후르츠의 시바야 토시히코씨의 아이디어가 모토가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명확하게 '근미래'를 내세웠던 것은, 이른바 '제5원소'구상이 누구의 생각에 의한 것 인가 라는 것은 모르지만, 지금 까지의 흐름으로 보아 현장레벨에 의한 것 이라는 생각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아키바'x'근미래'='츠쿠바 익스프레스 개통'→'리니어 모터걸' 이라는 직구를 던진 것은, 시노기씨. 현장의 열의를 구상적인 비전을 회의에 반영 시킨, 상당히 중요한 부분은 그가 한 일에 의한 것 이었다.
그리고 '구 세대의 추진력과는 다르다', 'Web세계를 통해서 인기가 늘었다' 라고 하는 점, 반대로 말하면 구 세대의 방식이 통용하지 않는 점도 도쿠마는 충분히 인식 하고 있었던 듯 하다.
⊙마이너리티와 파퓰러리티의 컨트롤
-마이너리티의 가치를 인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십니까?
시 노기 : 레코드 회사도 영리목적인 기업 인 이상, 파퓰러리티는 무시 할 수 없습니다만, 어느 시대라도 히트를 쳤다라고 하는 것은 어느 한 순간은 마이너리티 입니다. 이 세상의 모두가 좋아하지 않아도, 10명중 1 사람이 홀딱 반해주는 가치관은 중요 합니다. 회사 안의 사람들 모두가 같은 퍼퓰러리티의 방향을 지향한다 라고 하면, 위에 서는 자가 그것을 컨트롤 하며, 얼마나 마이너리티를 활용하느냐가 중요. 그래서 최대공약수가 아닌 흥미로운 것이 생겨납니다. 크리에이터가 재밌는 것을 만드는 조력자나, 환경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한방 이지요.
툭 까놓고 말해서 일본의 아이돌 가요 중에서 Perfume만큼 마이너리티와 파퓰러티의 컨트롤이 어려운 유닛은 달리 없을 것 이다.
아이돌 팬과 클럽뮤직팬, 일반적인 J-POP의 팬, 모두를 포용하는 Perfume. 어느 쪽에도 치우치면 질려버리는, 그 미묘한 줄다리기의 키잡이는, 시노기씨와 시라이시씨에게 맡겨져 있다.
⊙사람과의 유대
-프로듀서 업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 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시노기 : 하나 콕 찝어서 고르기가 어렵습니다만, 최종적으로는 사람과의 유대가 아닐까요. 음악업계는 좋은 시기도 나쁜 시기도 있는데 하락세 라고 하는 지금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사람 들 간의 좋은 유대가 좋은 일을 낳습니다.
회사동료가 아니라, 날마다 개개인의 인간관계가 커다란 흐름을 낳고, 그 연장선에서 대박이 터지는 일도 있습니다. 사람의 심상풍경을 만드는 음악의 세계이기에, 인간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Perfume은 사람과 사람의 유대 에서 태어 났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프로젝트 이군요.
시 노기 : 중요한 것은 저 한테 상담하러 와 주었다는 것. 제가 만약에 음에 위하감을 느꼈다고 해도, 심적인 부분을 분명히 알아 줄 것이다, 라고 그들이 생각했다면 그런 점이 기쁠 것 같습니다. 근본에 있었던 것은 당시 이야기를 꺼내주었던
어뮤즈의 나카무라 치프, 이시이, 야마모토 이 세 분의 열정 이었습니다. 나카무라씨는 사실 작년 타계 하셨습니다만, 분명히 기뻐해 주실거라고 생각 합니다. Perfume은 멤버가 초등학교 때 부터 어뮤즈에서 발굴되어 키워지고 있었으며,
어뮤즈 스쿨의 1기생 으로서 트레이닝 되고, 8년째가 되어서야 겨우 싹이 텃습니다. 돌아가신 그는 그 매니저 였습니다. 그에게도 대박이난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Prima Box」의 크레딧 에는 「Great Dedication to Shinichi Nakamura (1957-2007)」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의 필사적인 노력, 그리고 시노기씨의 진력을 다한 판매가 없었다면 현재의 Perfume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팬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도쿠마에서의 메이저 데뷔.
아이돌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모르는 도쿠마는 오래된 방식의 형태로는 전혀 미디어 상에서의 단기소비형태전략을
취하지 않 마치 엔카와 같이 착실하고 끈덕진 전략을 취했다. 이것이 나중에 공적을 세울것이라고, 그 때 당시 누가 상상이나 가능 했을 까.
■[Perfume] Perfume의 메이저 데뷔를 둘러 싼 Amuse와 도쿠마의 관계 그리고 도쿠마의 목적을 고찰하다@Original Confidence
2008/02/18호
Perfume이 뜨는데 일조한 한 사람이 말하는 대박의 철학
「열의를 가진 젊은 인간의 후원자가 되 주는 것이 "어른"인 스텝이 다 해야 할 역할」
시노기 마사히로씨(TJJC사 집행간부 제작선전본부장 대리)
Original Confidence 2008/02/18호에 개제 둰 Perfume의 소속 레코드 회사인 도쿠마 재팬 커뮤니케이션즈의 이사 제작선전본부장 대리(현 제작본부본부장)인 시노기 마사히로씨의 귀중한 인터뷰.
좀 시간이 지난 것 이지만, 주간지 인데도 5000엔 이나 하고 엽계지 인데도 중고 시장에는 잘 나오지 않아서 이제서야 겨우겨우 입수. 이걸 모토로 Pefume의 메이저 데뷔를 둘러싼 경위와 도쿠마의 목적을 보자.
⊙애당초 왜 Perfume은 도쿠마 에서 데뷔 한것인가.
Perfume측 에서 「도쿠마 에서 메이저 데뷔」란 발표가 났을 당시, 팬들은 상당히 불안했다고 한다.
도 쿠마는 기원이 되는 미노루 폰 시절 부터 센 마사오를 필두로 하는 엔카와 도쿠마 선전 그룹 시절 부터 지브리 관계의 이미지가 아직도 강하다.(2001년에는 제일흥상에게 주식양도 되었지만, 지브리 음원은 아직도 도쿠마에서 나오고 있다.)그러한 회사가 아이돌을 팔 수 있을 것 인가? 라는 것은 당연히 불안 했다.
당시 Perfume과 함께 Amuse의 BEE-HIVE 프로젝트에 소속되어 있던 Buzy와 Boystyle 을 보자면, Boystyle은 2002년, Buzy는 2004년에 테이치크엔터테인먼트의 산하에 있는 Imperial Records에서 CD데뷔/메이저 데뷔를 했다.(덧붙여서 BEE-HIVE활동이 시작 되기 전의 Color는 Warner Music Japan)
그러나 같은 시기의 Perfume은 Imperial Records에서 CD를 낼 수 없었고, Amuse와 Culture Convenience Club에 의하여 프로젝트를 위하여 만들어 진 인디즈 레이블 BEE-HIVE 코드 에서 2003년 8월에 「스위트 도넛」을 발매 하게 된다.
Perfume은 왜 Imperial Records에서 데뷔하지 않았던 것 일까. 혹은 데뷔하지 못 했던 것 이었던 것 인가. 진상은 지금도알 수가 없다.
Perfume 이 맨 처음 야스타카와 레코딩 했던 것은 세 곡. 키노코의 토크와 라이브를 선보이는 타이밍 에서 추측해 보면 「모노크로」와 「레시피」「도넛」이거나 혹은 히로시마에서 가지고 올라온 「제니」이다. 이런 것 들의 음원과 히로시마에서 이제 막 나왔던 세 사람을 보고 메이저 데뷔를 시킬 가치가 없다고 판단 한 것은 Amuse 인가 Imperial Records인가.
어쨋든 Perfume은 메이저 데뷔를 못한 상태로 BEE-HIVE레코드 에서 2장 이나 릴리스가 이어졌고, 메이저 데뷔를 시켜줄 곳을 "필사적으로" 찾고 있었던 Perfume스텝이 이야기를 꺼냈던 것이 그 시노기 씨.
-Perfume을 담당하는 것이 된 경위는?
시 노기 : Perfume은 어뮤즈의 소속 탤런트로, 저는 현재의 회사 전에 리와인드 레코딩 이라고 하는 어뮤즈와 빅터 시가 공동 출자 하여 만든 회사의 제작 부장으로 있었습니다. 그 당시 부터 알고 지냈던 어뮤즈의 스텝 세 사람이 "어떻게 해서라도 팔고 싶은 유닛이 있다" 라는 말을 하며 저에게 상담을 하러 왔던 것이 발단 이었습니다. 04년9월의 일 입니다.
-이미 인디즈로 활동을?
시 노기 : 나카타 야스타카의 사운드 프로듀서로 'BEE-HIVE레코드'라고 하는 인디즈 레이블 에서 이미 CD를 세장 발매 하고 있었습니다. 테크노 사운드를 씌운 근미래형 아이돌 이라는 포지션 으로, 아키하바라의 코어한 층을 중심으로 전개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노기 씨와 Amuse/Perfume스텝을 이어주는 것, 그것은 Re-Wind Recordings였다.
Re-Wind Recordings는, Amuse와 빅터엔터테인먼트의 공동출자로 1999년에 만들어진 스트릿 계열 음악에 특화된 전략을
내 세운 제작회사. 직접 받은 인상으로는 스트릿 이라고 하기 보다, 호소노 하루오미가 주재인 Daisyworld Discs, 시너지 기하학이 사라진 뒤 제 2기 데이지의 인상이 강했다. 「Hosono Box」나「Pre-YMO「InDo」같은 것도 여기서 나왔다.
시노기 씨는 와타나베 프로를 거쳐서 토에이EMI에서 시이나 링고를 데뷔 시킨 후, 제작부장으로서 Re-Wind로 옮겨서, 여기서 Amuse/Perfume 스텝 과의 인연을 맺었다고 한다.
그 밖의 이 회사는 2002년에 해산.*1 그 후 도쿠마로 옮긴 시노기씨를 Perfume 스텝이 의지하고 있었다.
Amuse 관련 회사 로서의 인맥, 그리고 전 Re-Wind 라고 하는, 어느의미로「뾰족한 음」으로 이해를 나타내는 사람, 이라고 하는 부분에서 중요했을 것 이다. 그리고 이 부분이 Imperial Records에 없었던 점 일지도 모른다.
⊙도쿠마 내부에서의 평가와, Amuse 스텝의 정열
- 들어보고 어떻게 느꼈습니까?
시 노기 : 솔직히 직감이 작용 했다던가, 확신이 갔다 라는 둥의 말도 안되는 게 아니라(웃음). 세대도 다르고, 솔직히 저희 세대는 이해하기 힘든게 맞는 말 이죠. 그래서 당사의 편성회의 에서는 여러가즤 의견이 나오겠구나 라는 걸 예측 할 수 있었습니다. 어쨌든 음을 들어보고, 그리고 신주쿠나 아키하바라 등에서 그녀들의 라이브를 몇 번 보러 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고 결단이 섰던 포인트는?
시 노기 : 상담하러 와 주었던 어뮤즈 스탭들의 정열 이었습니다. 이게 전부 였을 지도 모릅니다. 구 세대의 가치관 만으로 Perfume을 평가 해버린다면 본질이 보이지 않지요. 마지막에는 "재밌으니까, 해 봅시다" 라는 이야기로(웃음). 그렇게 사내 회의 에서 말 했던 걸 기억 하고 있습니다.
시노기 씨를 설득햇던 것은, 초대 치프 매니저 였던 고 나카무라 신이치 씨, 초대 매니저였던 이시이씨, 그리고같은 년에 Amuse에 막 입사 했던 2대 매니저 야마모토 시로 aka 못상 이렇게 세 사람.
세 사람의 정열이 , 시노기 씨를 경유하여, 엔카와 지브리 였던 도쿠마를, 최종적으로는 "재밌으니까" 라는 이유로 움직였다. 거기엔 시노기씨의 '어른' 으로서 젊은이들의 정열을 받아들이는 법이 있었다.
⊙젊은이들에게 맡긴다고 하는 것.
-이해가 안 되는 것을 추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용기가 필요한 것이 아니었습니까?
시노기 : 회사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여태까지의 경험치와 실적을 바탕으로 "어른의 해석"을 해 버리는 경향이 있어요.
예 를 들면 이번 Perfume은 테크노 사운드가 특징 인데, YMO의 테크노를 현재의 10대는 모르니까 받아들일 것 인가, 라는 해석이나 이론을 붙이고 싶어 하지요. 확실히 그런 것도 필요 하지만, 감성을 모두 이해 하기에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마지막은 정열을 가지고 열심히 임하는 스텝의 마음을 느끼고, 이해가 안 되는 문화를 받아들일 용기도 필요 하다고 생각 했습니다. 열의를 가진 젊은 인간의 후원자가 되 주는 것이 '어른' 스텝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닐 까 생각 합니다.
Perfume 은 '아키바'나 '근미래'가 키워드인 유닛 이기 때문에, 당시의 츠쿠바 익스프레스 개통 으로 타이업 된 '리니어 모터 걸'(메이저 데뷔 곡 타이틀) 이라는 전개는 어떠한가 라던가, 저도 몇 가지 사견을 정리하여 스텝에게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만, 총합 프로듀서도 아닌데 주제넘게는 못 하고, 기본적으로는 젊은 사람들 에게 맡겼습니다.
-프로듀서가 모든 것을 통괄 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 노기 : 아니었어요. 음 이나 PV영상, 방향성 등을 분담하여 각자의 분야의 스텝이 주장을 내세웁니다. 나카타 야스타카 씨도 다른 인터뷰 에서도 말했지만, Perfume에게 누가 프로듀서 인지 모르겠다고(웃음). 그리고 기무라 카에라 씨의 라디오 라던가 '아키바'라고 하는 가치관에도 통할 것 이라고 생각 하는데, iTunes나 인터넷 게시판 이라고 하는 Web의 세계를 통해 '인기가 늘었다' 라는 것이 가능 한 것도 이 시대의 특성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도 구 세대의 추진 과는 다르기 때문에, 그러한 시대감각을 민감하게 캐치하는 젊은 스텝을 밑에서 지지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Perfume이 층쿠나 아키모토 야스시, 코무로 테츠야와 같은 총괄 프로듀서를 갖지 않고, 각 분야 마다 젊은 스텝의 집합체로 있을 수 있는 것은, 시노기 씨의 이러한 생각에 의한 것 일까.
게다가 '근미래'전략에 대해서 중요한 발언.
테크노 팝 노선을 깐 것은 아마도 Amuse 신입발굴/육성담당인 전 주시후르츠의 시바야 토시히코씨의 아이디어가 모토가 되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명확하게 '근미래'를 내세웠던 것은, 이른바 '제5원소'구상이 누구의 생각에 의한 것 인가 라는 것은 모르지만, 지금 까지의 흐름으로 보아 현장레벨에 의한 것 이라는 생각이 적절할 것이다.
그러나 '아키바'x'근미래'='츠쿠바 익스프레스 개통'→'리니어 모터걸' 이라는 직구를 던진 것은, 시노기씨. 현장의 열의를 구상적인 비전을 회의에 반영 시킨, 상당히 중요한 부분은 그가 한 일에 의한 것 이었다.
그리고 '구 세대의 추진력과는 다르다', 'Web세계를 통해서 인기가 늘었다' 라고 하는 점, 반대로 말하면 구 세대의 방식이 통용하지 않는 점도 도쿠마는 충분히 인식 하고 있었던 듯 하다.
⊙마이너리티와 파퓰러리티의 컨트롤
-마이너리티의 가치를 인정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십니까?
시 노기 : 레코드 회사도 영리목적인 기업 인 이상, 파퓰러리티는 무시 할 수 없습니다만, 어느 시대라도 히트를 쳤다라고 하는 것은 어느 한 순간은 마이너리티 입니다. 이 세상의 모두가 좋아하지 않아도, 10명중 1 사람이 홀딱 반해주는 가치관은 중요 합니다. 회사 안의 사람들 모두가 같은 퍼퓰러리티의 방향을 지향한다 라고 하면, 위에 서는 자가 그것을 컨트롤 하며, 얼마나 마이너리티를 활용하느냐가 중요. 그래서 최대공약수가 아닌 흥미로운 것이 생겨납니다. 크리에이터가 재밌는 것을 만드는 조력자나, 환경을 만들기 위한 마지막 한방 이지요.
툭 까놓고 말해서 일본의 아이돌 가요 중에서 Perfume만큼 마이너리티와 파퓰러티의 컨트롤이 어려운 유닛은 달리 없을 것 이다.
아이돌 팬과 클럽뮤직팬, 일반적인 J-POP의 팬, 모두를 포용하는 Perfume. 어느 쪽에도 치우치면 질려버리는, 그 미묘한 줄다리기의 키잡이는, 시노기씨와 시라이시씨에게 맡겨져 있다.
⊙사람과의 유대
-프로듀서 업 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 이라고 생각 하십니까?
시노기 : 하나 콕 찝어서 고르기가 어렵습니다만, 최종적으로는 사람과의 유대가 아닐까요. 음악업계는 좋은 시기도 나쁜 시기도 있는데 하락세 라고 하는 지금은 더욱 더 그렇습니다. 사람 들 간의 좋은 유대가 좋은 일을 낳습니다.
회사동료가 아니라, 날마다 개개인의 인간관계가 커다란 흐름을 낳고, 그 연장선에서 대박이 터지는 일도 있습니다. 사람의 심상풍경을 만드는 음악의 세계이기에, 인간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Perfume은 사람과 사람의 유대 에서 태어 났다 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프로젝트 이군요.
시 노기 : 중요한 것은 저 한테 상담하러 와 주었다는 것. 제가 만약에 음에 위하감을 느꼈다고 해도, 심적인 부분을 분명히 알아 줄 것이다, 라고 그들이 생각했다면 그런 점이 기쁠 것 같습니다. 근본에 있었던 것은 당시 이야기를 꺼내주었던
어뮤즈의 나카무라 치프, 이시이, 야마모토 이 세 분의 열정 이었습니다. 나카무라씨는 사실 작년 타계 하셨습니다만, 분명히 기뻐해 주실거라고 생각 합니다. Perfume은 멤버가 초등학교 때 부터 어뮤즈에서 발굴되어 키워지고 있었으며,
어뮤즈 스쿨의 1기생 으로서 트레이닝 되고, 8년째가 되어서야 겨우 싹이 텃습니다. 돌아가신 그는 그 매니저 였습니다. 그에게도 대박이난 것을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 그것이 지금 상당히 안타깝습니다.
「Prima Box」의 크레딧 에는 「Great Dedication to Shinichi Nakamura (1957-2007)」라고 기술되어 있다. 그의 필사적인 노력, 그리고 시노기씨의 진력을 다한 판매가 없었다면 현재의 Perfume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건 그렇고 팬들을 불안하게 만들었던 도쿠마에서의 메이저 데뷔.
아이돌을 어떻게 팔아야 할지 모르는 도쿠마는 오래된 방식의 형태로는 전혀 미디어 상에서의 단기소비형태전략을
취하지 않 마치 엔카와 같이 착실하고 끈덕진 전략을 취했다. 이것이 나중에 공적을 세울것이라고, 그 때 당시 누가 상상이나 가능 했을 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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