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장롱 면허가 3박 4일 동안 스쿠터 여행 한 이야기를 담습니다(+카트)
아마 부모이신 분들이 보면 기겁할 글. 어떻게 딸을 이런 여행에 보낼 수 있어 하고. 근데 걱정보다 더 많은 걸 느끼고 배우고 즐기는 여행이었음. 가고 싶었고 실제로 갈 수 있어서 행복하고 자유로웠다.
서귀포에서 스쿠터로 50km 달려서 도착한 함덕 해수욕장 풍경. 한적한 해변에 맑은 날씨를 즐길 수 있었다.
1일차 일정
- 스쿠터 대여 전, 적응을 위한 카트 타기 (윈드1947카트 테마파크)
9.81 파크에 다녀온 후로 2년 만에 타보는 카트!
나는 같이 간 분과 함께 1인 3바퀴 주행, 25,000원 권을 구입했다
오일로 주행하는 카트는 처음 타본다. 오일로 주행하는 만큼 매캐한 연기가 뿜어나오기도 하고(지구야 미안해) 9.18 파크 때는 초보자 모드여서 오르막에서 내리막 가는 길로 2바퀴 돌았다면 이번에는 작은 레이싱 경기장 처럼 생긴 곳을 달렸다. 핸들을 조금만 꺾어도 회전이 많이 되었던 점이 다음 날 스쿠터를 몰기 전에 좋은 연습이 됐던 것 같다. 커브길이 나오면 적절하게 브레이크를 밟았는데 안 밟고 그냥 최고속도 찍으면서 달렸으면 어땠을까 궁금하다. 2인으로 탔던 분들 보니까 운전에 능숙하신 분이 몰아서 그런가 내 카트를 앞질러서 가는 모습을 보며 저렇게 까지 속도가 나올 수 있구나 싶었다. 하지만 괜히 조절도 못하는 속도 냈다가 카트 뒤집어 지는건 보다 나으니까.
카트를 타면서 고카트가 생각났다. 고카트는 딱 윈드 1947 테마파크에서 탓던 카트랑 비슷하게 생겼다. 고카트는 차체가 낮고 최고 속도는 37km ~ 40km 정도로 생각보다 빠르다. 그리고 f1 선수가 되기 위한 첫 입문 단계이기도 하고.
https://www.youtube.com/watch?v=76rZHZO4ATY (
알파 타우리 소속이 된 다니엘 리카르도가 자기 집은 부자가 아니라서 고카트 시절 부터 집안에서 돈 마련하느라 힘들었단 이야기를 했는데 선수들은 고카트도 고가 제품을 타야 기록을 낼 수 있기에 돈을 아낄 수도 없었을 것이다. 기록에 나와야 f3 -> f2 -> f1선수까지 될 수 있는 모터 사이클 선수들의 행보를 생각해봤다. 스쿠터가 만약에 무섭지만 어떤 느낌인지 궁금한 분들은 개방형으로 만들어진 고카트가 좀 비슷하기 때문에 고카트도 추천한다. 직선거리 보다 곡선 거리에서 속도를 느끼며 달리는 거리가 특히 재미있었고 일반 차선이 아니니까 비교적 자유롭게 운전할 수 있는 점도 좋았다. 특히 다 끝나고 헬멧 벗을 때 특유의 후련함과 신기한 기분을 다른 사람들과 공감해 보고 싶다.
2일차 일정
- 스쿠터 주행 시작 : 서귀포 -> 표선 해변 -> 성산일출봉 -> 서귀포 (남원 방향) | 주행거리, 편도 95.8km
- 목적지까지 가장 편안했던 라이딩. 바닷바람이 강했지만 버틸 수 있는 정도였다.
비가 온다고 되어 있어서 3일차 부터 빌리려던 스쿠터를 2일차 부터 빌리게 됐다.
2일차 일정은 서귀포에서 표선 해변 마지막으로 성산일출봉으로 갔다가 다시 서귀포로 돌아오는 제주도 동쪽을 해안 도로를 타고 달리는 코스 였다. 편도 47.9km, 첫날 부터 왕복으로 약 100km를 주행하는 결코 짧지 않은 코스였다. 하지만 출발 할 때 흐리던 날씨가 점점 개기 시작하더니 표선에 도착했을 때는 화창하게 날씨가 맑아있었다. 해가 쨍쨍해 지면서 아무런 대비 없이 스쿠터를 타는 바람에 팔다리가 탓긴 했지만 이렇게 타보기도 하면서 여름에 스쿠터 탈 때 뭐가 필요한지 알아가는 거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떤 이유는 스쿠터 여행을 하면서 보고 싶었던 풍경을 봤기 때문이었다.
특히 표선 해변으로 가는 길에 잠깐 보였던 에메랄드 빛 바다가 정말 예뻤다. 그래 스쿠터 타면서 보고 싶었던 풍경이 바로 이거였지! 했던 풍경을 보며 소리없이 감탄을 지르기도 하고 같이 갔던 분과 신호에 설 때 마다 간단하게 서로 날씨가 좋아져서 기분이 좋다는 신호를 주고 받는 것도 재미었었다.
특히 표선 해수욕장 특유의 차분하고 조용하면서 평화로운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정말 여름 휴가 왔구나. 내가 좋아하는 이 바다를 직접 이 곳을 운정하고 왔다는 뿌듯함도 컷고. 바닷가에 발을 담그기도 했는데 발이 시원해지면서 몸 전체가 시원해 지는 기분이 좋았다. 미역이 발에 걸리는 것도 마냥 재미있었다.
즐거운 일도 있었지만, 첫 날 부터 같이 탄 분이 탔던 스쿠터가 시동이 안 걸리는 일이 있었다. 불행 중 다행으로 위기 상황에 잘 대처 하셔서 사고 안 나고 새로운 스쿠터로 교체 했는데 다음에는 관리가 잘 된 스쿠터를 타야 겠다는 생각이 거듭 들었다. 큰 사고가 날 뻔 했지만 침착하게 잘 대응 하셔서 다행이었다. 기다리며 여유롭게 위미리 마을과 스쿠터 사진도 찍었다.
*대여한 스쿠터 기종 : sym mio 50cc
대충 글을 찾아보니 sym이라는 대만의 유명한 스쿠터 회사에서 만든 50cc 기종이라고 한다.
스쿠터 대여업체에서 언제 만들었는지 모르겠으나 이 모델이 출시된지는 거의 10년이 넘은 듯 한, 연식이 상당히 있는 모델이었다. 총 주행 거리 자체도 67,000km 가 넘어갔고 연료가 반 이하로 줄어들면 시속 50km 도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오르막길도 문제없이 올라가고 초보자가 다루기에 편했던 모델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다음에 탄다면 좀 더 관리가 잘 된 새로 나온 스쿠터를 타보고 싶다.
표선 해수욕장 근처의 카페에서 1시간 정도 쉬고 스쿠터를 성산 일출봉으로 몰았다. 성산 일출봉까지 올라가지 않고, 근처에서 성산일출봉과 파란 바다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한적한 바닷가에서 승마를 하는 사람도 있고 관광객도 있었다. 표선 해변과 달리 바람이 특히 많이 불었는데 바람이 많이 불어서 그런가 탁 트이고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바다 느낌이 가득 했다. 해안도로를 달려서 성산 일출봉에 왔다는 걸 어떻게 자랑하면 좋을까.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 만으로도 큰 성취감을 느꼈다.
첫번째 날은 날씨가 좋아서 목적지까지 갈 때 전체적으로 운전하기 수월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바닷 바람을 많이 맞았다. 그래서 스쿠터가 바람 때문에 흔들리기도 했는데 승용차를 타고 가도 차가 흔들리는 코스인데 스쿠터는 오죽할까, 왜 이걸 까먹고 있었을까 한번 넘어지면 사망이다 라는 생각과 동시에 넘어지지만 말고 가자 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특히 이 날은 칼치기도 당했던 기억이 난다. 방해 안 될 만큼 사이드로 가서 운전 하는데도 그거 마저 빨리가겠다고 앞질러서 가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긴다고 말하는 한국 다운 행동 같다고 생각했다. 큰 차를 당연하게 양보하고 작은 차는 후순위로 밀리고 사고 나도 자기 책임이고 너가 이륜차를 몰았던게 잘못이라고 하는 그런 문화. 자동차도 체급별로 취급하는 태도가 달랐지. 그러면 50cc 스쿠터는 오죽할까. 원래 부터 이런 운전 문화 였는데 요새 좀 나아진 걸까, 이런 생각들이 1일차 운전을 끝내고 스믈스믈 들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운전에만 집중하는 시간이 가장 좋았다.
3일차 일정
- 스쿠터 주행 2번째 날 : 서귀포 -> 사려니 숲길(남조로 도로 이용) -> 함덕 해수욕장 -> 서귀포 (남조로 이용) | 주행거리, 왕복 93km
- 남조로에서 펼쳐지는 나무로 된 터널이 예뻤지만 산은 날씨를 예측할 수 없었다. 비가 가는 길, 오는 길에 비를 살짝 맞았다.
스쿠터를 대여하며 업체에서 몇몇 가면 안 되는 도로를 알려줬다. 그 중에서 516도로라고 하는 곳과 1110도로가 있었는데 사려니 숲길을 차가 가는 도로로 이용하면 '516 도로' 라고 하는 곳을 추천해준다. 그래서 50cc 스쿠터로 함덕 또는 사려니 숲길을 가려면 '남조로도로' 라고 하는 곳을 경유지로 꼭 넣어서 2개 도로는 피해가야 한다. 남조로 도로는 양 방향으로 1개 차선 밖에 없지만 커브길이 거의 없는 운전하기 쉬운 도로이고 1일째에 겪었던 바닷바람도 없어서 비교적 운전하면서 안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운전 하다보니 큰 차 들이 제법 많이 지나갔는데 제주 쪽으로 가는 공사하는 차량이었다. 스쿠터를 타면서 속도가 느리다는 이유로 자동차들 빨리 갈 수 있도록 길을 많이 비켜줬는데 이 날은 트럭을 많아 봤던 기억이 난다. 사이드로 비켜주면 알아서 속도 준수 하면서 앞으로 가줘서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사려니 숲길에 도착 했는데 날씨가 흐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 했다.
제주도를 떠올리면 섬나라 라서 그런가 바다가 많이 생각 나는데, 숲길도 못지않게 매력적인 곳인 것 같다. 숲길만이 주는 고요함과 높게 뻗은 나무가 좋고 맑은 공기와 새 소리가 편안하게 느껴진다. 조금만 숲길에서 벗어나도 금방 습해지는데 숲길은 그냥 시원하기만 했다. 우리가 갔던 날은 비가 살짝 내리고 햇빛이 별로 안 들었는데 앞으로 길이 어디 나가야 할 지 몰라서 막혀있는 곳을 보면 이런 데 밤에 와서 길 잃으면 그대로 조난 당하겠구나, 라는 자연의 무서움과 위대함을 느끼기도 했다. 사려니 숲길에서는 2시간 좀 안 되게 걸었던 것 같다. 중간에 쉬면서 의자에 앉아서 오는정 김밥에서 예약해서 사온 김밥을 먹었는데 잠깐 먹으면서 쉬기만 해도 에너지가 올라오는게 느껴졌다. 그렇게 사려니 숲길을 빠져 나왔다.
함덕으로 가는 길은 부슬비가 내렸는데 고민 하다가 함덕으로 향했다. 빗길에 운전을 하는게 고민되고 잘 하는 짓일까 걱정하던 차에 점점 날씨가 맑아왔고 아스팔트 공사하던 길도 안전하게 지나갈 수 있었다.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던 열기가 얼마나 뜨겁던지. 조천면에 들어섰을 때는 화창하게 갠 날씨를 볼 수 있었고 조금 더 달려서 도착한 함덕해수욕장은 그늘이 하나도 없었다.
함덕 해수욕장은 언덕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작은 정자가 하나 있는데, 그 곳에서 바다를 내려보고 싶었다.
그늘진 정자에서 넓은 바다와 파란 풀밭을 보면서 바다 마다 가진 매력이 다르다고 느꼈다. 특히 함덕은 갔던 관광지 중 가장 많은 가게들과 사람을 봤던 상업화가 잘 이뤄졌던 곳이었고 장마철이 지나면 많은 사람들로 붐빌 것 같았다. 그나마 사람이 적은 날에 와서 조용한 곳에서 지켜보며 정자에서 남은 김밥을 먹으며 숨도 돌리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부슬비가 내리더라도 함덕에 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못 할 것 같다 라는 생각보다, 일단 할 수 있는 만큼 해보자라는 결정이 가져다준 값진 선물 같았기에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도 커지는 기분이었다.
비록 다시 돌아가는 길에는 살짝 비가 내리고 거의 2시간이 되는 주행 거리 였기 때문에 쉬어가기도 했지만 좀처럼 찍기 힘든 산길 풍경도 찍을 수 있었고, 쉬어서 운전 했기 때문에 안 다치고 숙소에 도착했다.
이 날 저녁에 먹었던 야키토리 타키비에서 식사와 바 머스크에서 먹던 술이 얼마나 맛있던지.
특히 바 머스크에서는 배달 음식을 무료로 먹게 해주셔서 위스키와 모듬전을 함께 먹으며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 배달음식 세팅도 직접 해주신다. 바 머스크는 서귀포에서 가장 오래된 클래식 바 인데 대표님께서 서귀포 바 머스크를 차리기 전 부터 구상했던 칵테일 '이중섭의 황소', 버번 위스키인 노아스 밀, 싱글몰트 위스키인 아벨라워 아부나흐 총 3잔 마시고 기분좋게 취기가 올라서 잠이 들었다.
4일차 일정
- 스쿠터 주행 3일째 :
(예정) 서귀포 -> 애월읍 -> 대정읍 : 날씨가 안 좋고 네비게이션이 공항으로 이어지는 평화로를 안내해서 주행 실패
(실제 진행) 서귀포 -> 1115 도로 -> 동광 6거리 -> 1116도로 -> 서귀포 , 왕복 54.4km
- 가장 위험했던 날씨. 우선 날씨가 안 좋았다 강한 바닷 바람, 짙은 안개, 오르막과 내리막(산길), 스쿠터가 운전하기 힘든 도로(평화로)로 잘 못 안내 받음. 목적하고자 하는 곳에 한 곳도 못 갔지만 가장 기억에 남고 운전 자체도 가장 스릴있고 재밌었다. 기억에도 가장 많이 남는 마지막 일정.
- 쟤네 어떡하냐 진짜.. 에서 "쟤네" 를 맡았던 날
어디서 부터 설명해야 할까. 감도 안 오는 날이 4일차 마지막 날 이다. 하나씩 이야기를 풀어봐야지. 우선 마지막날은 아래와 같이 스쿠터로 달렸다.
출발 할 때 까지만 해도 그냥 흐리기만 했는데 1115도로(산록도로)에 들어오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어떤 도로인지 궁금해서(1110도로랑 이름이 비슷해서 무섭기도 했음) 전 날 미리 1115 도로가 어떤지 찾아봤는데 '드라이브 하기 좋은 곳' 이라는 평이 있었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그렇겠지. 그리고 자동차한테는 해당이 되는 말 일 것이다. 곡선이 거의 없고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곳이기 때문에. 실제로 맑은 날에 차로 1115도로를 다니면 왼쪽으로는 바다 앞으로는 산을 볼 수 있어서 멋지긴 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하면 거의 커브길이 없어서 나도 무사히 운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비가 많이 오고 산이라서 안개까지 심한데 왼쪽에선 중문 바다 쪽에서 바다 바람이 불어오고 뒤에서는 큰 차들이 다가오고 있는 것 만으로도 불안해지기 딱 좋은 상황이었다. 이 상태에서 커브길까지 있었다? 너무 막막했을 것 같다.
우리가 운전 했던 날은 이것 보다 짙게 안개가 깔렸고
이것보다 더 많은 비가 내렸다.
당연하게도 조금만 움직여도 스쿠터가 빠르게 미끄러지는게 느껴졌다. 이건 집중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던 것 같다. 특히 운전 자체에만 집중하고 미끄러진다, 뒤에 누가 온다라는 사실만 인지하고 그것에 대한 가치평가는 하지 않으려고 했다. 미끄러진다 -> 사고나겠다, 위험하다 / 안개 때문에 앞이 안 보인다 -> 누가 달려오면 어떡하지?, 내가 받으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이 아니라 그저 미끄럽다. 안개가 심하다. 라는 걸 사실로만 인지하고 '천천히 달리자. 다치지만 말자' 만 계속 생각했다. 그리고 뒤에서 따라오는 친구가 잘 오고 있고 내가 잠깐 쉬어가자고 하면 바로 따라와 줄거라는 강한 믿음. 현재 상황만 생각 하려고 했다.
비가 얼마나 많이 왔냐면 비줄기가 몸을 때려서 아플 정도로 내렸다. 50km 언저리 되는 이 속도가 체감 속도로는 얼마나 느껴졌을까? 스쿠터 사이드 미러는 물론이고 헬멧도 다 젖고, 옷도 다 젖었다. 이 상태로 길게 운전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 근처의 피하려고 그리스신화박물관으로 가려고 했다. 조금 더 1115 도로를 달리다 보니 평화로 방면으로 스쿠터를 틀라는 안내가 나왔고 평화로는 제주 공항으로 나가는 쪽이라서 서울로 치면 올림픽 대로 같은 곳일텐데 우리가 지금 가면 다시 서귀포로 돌아올 수 없다고 본능적인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다시 오던길로 돌아가니까 카페 산록이라는 곳이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 무서운 곳에(비가 안 오면 평화롭고 멋진 곳이지만) 어떻게 이런 은인 같은 가게가 있을까 하고 들어가서 레몬진저티를 마셨다. 카페 사장님께도 평화로를 안 타고 가려면 어떤 길로 가야 할 지 물어봤는데 '동광육거리'로 가면 평화로를 안 타고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알려주셨다. 생각해보니 보통 지도앱에 의지해서 길을 가는데 위기상황이 되니까 기계는 한계가 있다고 느꼈던 것 같고, 남한테 길을 물어보는 것도 오랜만인 것 같았다. 위기상황에 처한다고 느꼈는지 더 적극적으로 살기 위한 행동도 하게 되는구나, 그런데 이렇게 적극적으로 먼저 나서는게 불편하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편했다. 평소에는 일부러 주변에서 어떤 의견이 나올지, 누가 어떻게 행동할지 살펴보고 나서야 내 의견을 표현해야만 비판받지 않으니까 나를 죽이는 편인데 (주변에서도 참아라, 자기 의견을 많이 눌러라는 이야기도 참 많이 들었다) 이게 나 답게 행동하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동광육거리로 가서 카페에서 핸드폰 충전을 하고 1116도로를 타고 서귀포로 향했다. 핸드폰 배터리가 30% 대로 떨어졌는데 아직 돌아가는 길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초조해졌다. 그래서 일부러 카페를 들렸는데 충분하게 충전하길 잘 했다. 다시 돌아가는데만 1시간 반이 좀 안되게 걸렸고 1116도로도 양쪽이 3차선인 도로였던 스쿠터로는 처음 경험해 보는 도로였고 이 때도 꾸준하게 비가 왔기 때문이었다. 최고 80km로 달려야 하는 곳이라 자동차들이 빠르게 달렸다. 아마도 자유로 같은 곳이려나? 넓어진 도로, 빨라진 주변 속도를 보고 무서워졌지만 차라리 이런 곳이 맨홀 뚜껑(스쿠터 달릴 때 피해야 함. 특히 빗길), 파인 길 (스쿠터 탈 때 피해야 함. 넘어짐) 없이 잘 정비 됐겠지 생각했던 것 같다. 동광육거리에서 서귀포까지는 안 멈추고 한번에 쭉 달렸다. 그래야만 늦지 않게 스쿠터를 반납하고 사고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냥 계속 치고 나갔던 것 같다. 큰 길에서 쉬었다가 다시 진입하는 것 보다 치고 나가는게 제일 안전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이 때도 옅은 안개가 있었다.
날씨 때문에 많은 돌발상황이 생겼다. 계속 주행을 할지 말지, 지금 가는 길로 나가야 할지 말지. 어떤 길로 나가야 할 지. 이런 것들을 이제와서는 혼자서만 결정 해야 했다면 아찔했을 것 같다. 막막해서 제대로된 판단을 했을까? 급한 성격 때문에 빨리 이 상황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압박감을 스스로 느끼고 사고가 났을 것 같다. 참 아찔하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같이 이야기 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가야 할지 상담할 수 있는 상대가 있다는 것에 고마움과 든든함이 컷다. 쉽지 않은 상황인데 서로에게 짜증한번 내지 않고, 쉬어가는 것도 언제든지 쉬어도 된다고 위기 속에서 오히려 더 편안함을 주려고 배려를 주고 받는게 느껴졌다. 1115(산록도로)를 지나가다 우리가 가던 방향과 반대로 돌아가는 2명이 1대 스쿠터를 탄 일행이 있었는데, 서로가 반갑게 바라보는 듯한 시선과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 찰나의 순간에 같은 스쿠터를 타고 같은 고생을 하고(그 쪽은 1대를 2명이 타서 더 위험부담이 있었을 수도) 왠지 모를 반가움이 느껴졌다.
그 분들 어떡하냐고 친구와 이야기 했는데 그 분들이야 말로 저 쪽으로 비도 많이 내리고 길도 답 없는데 "쟤네 어떡하냐" 라고 생각을 했을 것 같다. 이래서 오토바이 주행을 다 같이 모여서 하는 건가? 도로에서는 자동차들이 대부분이니까. 만약에 펑크라도 나면 서로 도울 수 있고 하다못해 스쿠터를 손으로 끌어야 하는 일이 생기면 서로 밀면서 옮길수도 있으니까. 위기상황에서 불안감을 잘 조정하는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숫자가 많으면 더 든든하고 외롭지도 않겠지. 이것도 어떤 의미에서 연대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나도 이번 스쿠터 여행을 2명이서 해서 같이 스쿠터로 제주도를 여행하길 잘 했던 것 같다.
왜 스쿠터를 골랐는가?
제주도는 렌터카를 빌려서 돌아다니는게 가장 편한데 왜 굳이 스쿠터를 빌렸을까?
3년 전인 2020년 겨울.
오키나와에서 전동 스쿠터를 빌려서 2시간 정도 운전했던 경험이 계기가 됐던 것 같다. 오키나와 이시가키 섬에서 전동 스쿠터를 운전하면서 따뜻하고 기분 좋은 바람, 한적한 거리 눈 앞에 펼쳐지는 푸른 바다. 스쿠터는 이 모든 걸 직접 느낄 수 있는 좋은 수단이었다. 자전거탈 수 있으면서 운전 면허가 있으면 탈 수 있는 스쿠터를 탈 수 있다.
목적지에 도착해서 그 곳에서 노는 것 보다, 나는 스쿠터를 타고 그 곳에 가는 과정을 즐기고 싶었다. 특히 스쿠터를 타며 달리는 다양한 경치를 보고 싶었다, 눈 앞에 펼쳐지는 바닷가 해변 경치, 나무로 된 터널이 보고 싶었는데 그 경치를 속도감을 즐기면서 시원하게 달리는 것도 기분 좋고, 그 때 만큼은 자유로운 기분을 즐기는 걸 기대했고, 운전에만 집중하던 그 때 자유로운 기분을 느꼈다.
차 같은 가림막이 없는 이동수단이기 때문에 충분히 조심하고, 안전하게 타야 하는 수단이다. 게다가 50cc는 1시간에 1번씩 쉬어줘야 스쿠터가 무리 없이 앞으로 나갈 수 있다. 스쿠터를 타며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차로 드라이브 하는 것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여행을 마친 지금은 원동기 면허 1종을 고민하게 만드는 매력적인 이동수단이다. 또 타고 싶다. 아니 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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